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2019년 교회의 주제말씀은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들자면 물론 예수라고 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사도바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사도 바울의 중심은 예수였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가장 핵심적인 구원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은 같은 것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 예수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사도바울 말씀의 핵심은 ‘우리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와 우리의 구원은 몇 단계를 거쳐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다른 개념으로 보인다. 하나님 나라는 큰 개념이고 구원은 개인에 해당되는 작은 개념으로 보통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나와 너, 우리, 세상을 다 포함하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새로운 세상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믿음으로 구원받음은 나 자신의 구원이라는 작고 좁은 말씀이며 구체적인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연결될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라이센스를 얻는 것과 같다. 운전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면허를 얻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 하며 예수를 믿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도바울이 말하는 나의 구원이 궁극적인 목적인가 아니면 궁극적인 곳에 들어가기 위한 통로인가 하는 것이다.
운전면허는 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운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구원을 받는 것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구원을 누리는 것, 즉 하나님이 통치하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지배하고 통치하며 하나님의 뜻이 통용되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고 과격하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적 구분이 없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이 사는 곳은 땅이라고 생각했다. 하늘과 땅은 하늘만큼 땅만큼이나 서로 연결이 없는 세상이었다. 하나님 나라도 당연히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는 이처럼 깰 수 없는 장벽을 깨고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것과 같이 땅에도 계시고,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이 땅에도 있다고 말씀하시며,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
둘째,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구분이 없다. 사람들은 미래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없기에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예수는 깰 수 없는 시간의 장벽을 깨셨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서 ‘일용할’이라는 단어의 아람어의 원 뜻은 ‘내일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우리에게 내일의 양식을 오늘 주옵소서’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내일의 양식이란 종말에 주실 생명의 양식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종말에 가서야 생명의 양식, 즉 참된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는 종말에나 받을 수 있는 그 생명을 지금 우리에게 달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 오늘의 양식과 종말에 받을 수 있는 양식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생명의 양식을 지금 누리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셋째,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은 왕이 아니라 아버지(abba)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왕이었다. 또한 로마제국에서 나라는 언제나 황제의 나라였다. 그러나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아버지였으며, 그것도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어린 아이가 부르는 ‘아빠’(abba, 예수가 말한 아빠와 한국어 아빠는 의미상 동일하다)였다. 이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는 군사적 승리를 통한(왕을 통한, 무력을 통한) 해방이 아니라, 잃은 자, 소외된 자, 병든 자, 죄 속에 있는 자들의 회복을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장 중요한 기존의 공간성과 시간성, 그리고 본질성을 모두 깨셨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만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생명의 양식은 종말에만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나라는 군사적 승리를 통한 해방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누릴 수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에도 있으며 어둠이 지배하고 환난이 넘치는 이곳에서도 회복의 역사로 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