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여리고에서 소경을 치유하신 후에
(누가복음에서는 삭개오를 회심시키셨음)
여리고에서 유대 광야 길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다.
이 길은 이스라엘 온 땅에 흩어져 살던 이들이
일년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전통적인 길 중 하나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때도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고 있었을 것이다.
마태는 성전으로 가는 이런 문화의 용어와 분위기를 빌려
예수님께서 한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이야기를 전해 준다.
대부분 도보로 입성하는 것과 달리
예수님은 슥 9:9절에 예언된대로 나귀(또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 비유이다.
또한 무리들이 함께 가며 "호산나"로 외치며 환영하는 것은
당시 축제때마다 백성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에 대한 들뜬 백성들의 소망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환영하던 무리들이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다고 해서
이들이 예수님을 이해한 것은 아닐터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온 한 선지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나귀 또는 나귀 새끼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측근에서 따르는 제자들도, 또 환영하는 무리들도
심지어 반대하는 종교기득권자들도 예수님이 행하신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아 또는 왕으로 예수님을 이해한 듯 하나,
예수님은 이삭에게 지워졌던 소명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인류 최후의 번제단인 십자가로 죽기 위해 입성하셨다.
종려주일의 의미는 예수님을 둘러 선 이들의 환호나 외침이 아니라,
침묵하시며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마태는 마가와는 다르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첫 날에 성전을 정화하셨다고 전해 준다.
그리고 그는 성전을 정화하시는 이야기에
맹인과 저는 자들을 치유하신 이야기와 어린이들이 외치는 호산나 찬양 이야기와
당시의 종교 권력자들의 반대 이야기도 함께 들려 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성전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성전 제도나 제사 제도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오히려 성전은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찬양과 기도가 드려져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전에서 판매자와 구매자들을 내쫓으신 것 일종의 행위 비유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잘못 운영하는 이들에 대한 대한 경고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성전은 인간 존재의 용서와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하고,
새로워진 인생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곳이어야 한다.
잎사귀만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야기는
믿음과 생명력이 없는 종교 행위에 대한 경고이자, 생명력이 있는 종교 생활을 위한 가르침이다.
장사와 일로서 하는 직무를 위해 매일 성전에는 오지만,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는 종교인들는 열매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말라 죽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생명력이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세상을 뒤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진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는 말씀이 참 좋은 것이나,
이 말씀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마 6장 33절과 함께 묵상되어야 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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