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가르침 모음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제기된 의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들려 준 세 개의 비유와
(두 아들 비유, 악한 소작인들 비유, 왕의 혼인잔치 비유)
예수님을 트집 잡으려고 목적으로 시도하는 적대자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성경 이해와 하나님 이해를 드러내심으로 그들을 침묵시키신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금 문제, 부활 문제, 가장 큰 계명 문제, 다윗의 후손 문제)
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성경과 하나님, 그리고 율법 적용에 대한 이해는
통일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생각들이 충돌하고 있던 시기였다.
질문하는 사람들인 사두개인, 바리새인, 율법사 등을 포함한 많은 유대인들은
성경과 하나님 그리고 율법을 적용하는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헬라 문화에 익숙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생각까지 더하면,
성경과 하나님, 그리고 율법을 적용하는 문제에 대한 관점들이 많이 달랐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알고.."
첫번째로 예수님께 와서 권위의 출처를 물었던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당시의 지배층으로 아마도 사두개인으로 불리는 이들과 일부 고위층 바리새인일 것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놀라운 일을 행하고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인가?' 아니면 '귀신의 왕으로부터인가?' 또는 '사람인 그 자신으로부터인가?' 하는 것으로
종교 재판을 염두에 두고 이런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에 대해 역으로 질문하셨고,
침묵하는 그들에게 세례 요한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듯이
자신의 권위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암시하듯이 알려 주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세 개의 비유를 들려 주셨는데,
첫번째 비유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은 큰 아들과
처음에는 불순종했으나 곧 뉘우치고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순종한 둘째 아들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지금 질문하고 있는 이들이 큰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 나라는 둘째 아들과 같이 회개하고 행함으로 순종하는 이들의 몫이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는 큰 아들이 불순종했다가 순종한 것으로 나온다.)
두번째 비유는 세를 받기 위해 주인이 보내는 종들과
심지어 아들까지 죽이는 악한 소작인들에 대한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배척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행함없이 정치, 종교적인 권력만 누리는 종교 지배자들을 향한 경고 비유이다.
악한 소작인들은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 포도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세번째 비유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열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왕의 비유이다.
이 비유에서 왕은 하나님을 의미하며,
혼인 잔치는 예수님으로 인해 열리게 될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왕의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은 지금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고,
대신 초대받을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구성원들일 것이다.
예수님으로 인해 열릴 하나님 나라에 들어 오는 조건은 예복으로 표시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다.
초대를 거절하는 이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예복(복음)이 없는 사람들은 내쫓겨 버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마태는 이어서 22장에서
당시의 종교 지배층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하는 몇개의 주제를 들려 준다.
종교 지배층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하는 의도는
그들이 예수님께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고약한 것이었다.
반대자들이 예수님께 한 첫번째 질문은 세금 문제였다.
헤롯이 유대를 통치할 때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A.D 7년부터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로마 총독들이 직접 다스리면서,
로마 제국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했다.
이 세금 문제는 유대 사회에서 갈등을 야기하는 문제였고,
세금을 징수하던 사람들인 세리들은 유대인들이 의해 죄인과 동격으로 치부되던 시기였다.
예수님이 청소년 시절을 보내던 A.D7년 경에
갈릴리에서 유다라는 사람이 세금을 거부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당시 종교 지배층들인 사두개인은 세금을 받는 것을 환영했을 것이고,
바리새인들은 옳지 않은 것을 알지만,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묵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당원들은 반대하면서 반란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복잡한 문제가 세금을 내는 문제였다.
예수님은 이들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율법에) 옳은 일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셨다.
세금 문제는 삶에서 필요한 많은 일 중에 한가지 일일 뿐이다.
그러니 물질적인 문제인 세금을 내고 안내고 하는 세상의 일에 목숨걸지 말고,
영생하도록 존재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진실되게 반응하며 살라 하신 것이다.
두번째 질문은 모세오경만 인정하면서
모세오경에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이 한 질문이다.
'만약 부활이 있다면, 이 땅에서 여러 명의 남편을 둔 여자는 부활 후 누구의 아내입니까?"
예수님은 이 질문을 한 이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다'고 질책하셨다.
예수님은 이어서 부활의 세계는 이 세상과 다르다고 하셨다.
즉 생로병사의 법칙 안에서 사는 현세와 다른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자기들의 생각과 사상 중심으로 하나님과 율법에 관련된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던
사두개인들의 협소한 성경 이해와 하나님 이해를 지적하셨다.
부활은 현세를 사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다.
세번째 질문은 가장 큰 계명 문제로
이 질문은 당시의 신학자인 한 율법사가 제기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그들과의 논쟁을 마무리하셨다.
율법 전체를 이렇게 요약하는 것은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 이미 알려진 일로 새로운 것은 아니였다.
다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성 있는 헌신으로 바꾸어도 좋을 듯하다.
반대자들의 질문으로 촉발된 가르침의 마지막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질문하신 것으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는데, 어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는가?'였다.
마태는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소개하고 있고,
여리고에서 치유받은 맹인 등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이라고 부르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하신 이 질문은 다소 의아한 질문일 수 있다.
이 질문을 하신 이유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지닌 협소한 성경 해석과
하나님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메시아라는 점에서는 다윗의 후손이시지만,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라는 관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의 후손이라는 칭호는
온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에 속하는 하나의 칭호일 뿐이다.
예수님은 이런 논쟁 형식의 가르침을 통하여
당시의 다양하지만 인간과 전통 중심의 협소한 성경 이해와 하나님 이해와 율법의 적용에 대해
하나님 중심의 새로운 성경 이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시각을 넓혀 주셨다.
성경과 하나님, 그리고 주신 말씀들을 삶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은
인간 중심의 협소한 관점으로 또는 호기심이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 성경을 배울 때에,
삶에서 실천하려는 자세로 임하라는 것이
마태복음이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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