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에서
가장 유명한 유명한 이야기는
"불이 붙었으나 사그라들지 않는 떨기 나무"일 것이다.
건조한 광야에서 번개와 같은 자연 현상으로
나무에 불이 붙는 장면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없는 것도 아니다.
어찌되었던 이 장면은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로 살고 있던
모세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모세는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라는 소명을 받았다.
이 특이한 떨기나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 중 하나는
떨기나무는 애굽에서 억압받는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킨다는 것이고,
나무를 불태우려는 불은 이스라엘 자손을 억압하는 애굽의 박해라는 것이다.
세상의 권력자로 대표되는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의 약속을 품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박해하여 멸하려는
그 당시의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 불이 붙은 떨기나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떨기나무를 태우려는 불이 붙었으나
그 불이 떨기나무를 태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스라엘 자손을 박해하던 불인 애굽의 바로는
도리어 하나님이 내리시는 철저한 벌,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장자까지도 잃는 심판을 당했다.
이런 점에서 불이 붙은 떨기나무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공동체, 즉 교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세상은 항상 교회를 늘 박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불에 타 사라질 것만 같은 연약한 떨기나무같은 교회이지만,
그 교회를 세상이 멸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불로 상징되는 세상의 박해가
떨기나무로 상징되는 교회를 태우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것이다.
요즘 예수님의 몸된 교회가 비난을 당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현명하게 코로나를 대처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도 있고,
불가항력적인 경우도 있는데,
어쨋든 교회가 욕을 많이 먹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함부로 교회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대제사장과 권력자들이 사도들을 박해하여 죽이려 할 때,
랍비 가마리엘이 현명한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은 "저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면,
너희가 막을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내버려 두라.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스스로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원칙이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교회에 적용될 수 있다.
그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세워졌으면 세상이 멸할수 없을 것이고,
그 교회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면,
세상의 어떤 권력이나 바이러스 등의 재앙도
교회와 신앙인들을 멸할수 없다.
이것이 떨기나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다.
두번째 의미는
광야의 흔한 연약한 떨기나무가 모세라는 것이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서 나름 실력을 갖추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도 연약한 존재였을 뿐이다.
그러나 떨기나무같은 연약한 존재인 모세가
하나님의 불로 충만하게 될 때,
40대에 이루지 못했던 꿈을 실현하게 된다는 점을 말해 준다.
모세가 소명을 받고 출애굽을 인도해갈 때,
종종 등장하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지팡이만 의지해야하는 연약한 모세를 감싸고 지키시는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불이신 성령께서 모세를 감쌀 때,
떨기나무인 모세가 애굽의 바로와 군대에 맞설 수 있었고,
길이 없는 광야를 지나갈 수 있는 보호와 은총을 받았다.
실제로 출애굽은
떨기나무인 모세를 감싸고 계셨던 하나님의 불,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하나님은 40살의 모세,
즉 애굽에서 잘 준비된 모세의 때에 일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몰아내셨다.
그리고
문명 세계에서 잘 준비된 모세를 넘어서는 새로운 모세를 만드셨다.
새로운 모세는 자신의 욕망은 비워지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만 있는 존재가 된다.
이런 점에서 모세의
떨기나무 이야기는 오고오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동시에 도전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이다.
용기를 준다 함은
떨기나무 같은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동안에
나를 위협하는 어려움, 박해, 고난이 어떠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삼키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점이다.
내 인생에 일어나고 다가오는 어떤 어려움도
떨기나무같은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이기지는 못한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이
나를 위협하는 모든 고난의 불을 능히 이기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함은
하나님의 사람 쓰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복 주시고,
사람을 통해 세상을 섭리해 가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자신과 함께
세상을 선하게 만들어갈 새로운 모세를 찾으신다.
그 새로운 모세는 탁월한 실력을 가진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떨기나무같은 존재이다.
떨기나무는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척박한 광야에서 자기 몫을 감당한다.
떨기나무 같은 새로운 모세는 드러나지 않고, 인정을 받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는 자신의 삶과 소명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 때도 어찌보면
떨기나무와같은 연약한 이들을 택하셨다고 볼수 있다.
그 연약했던 제자들이 하나님의 불인 성령을 만나게 될 때,
세상 역사를 바꾸는 존재들이 되었다.
떨기나무같은 새로운 모세는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이 일하심은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는 이러한 때에
신앙인으로 주신 소명을 따라 살아갈 용기와
이 땅을 살리실 하나님의 은총이 다시 주어지기를 사모하면서
모세의 떨기나무 이야기를 더 깊이 묵상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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