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요묵상

평범함 속에서 만나는 비범함들(족장들)

로마서 4:1-3절은 바울이 아브라함을 해석한 것인데,

아브라함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것이고,

 

야고보서 2:21-24절은 야고보가 아브라함을 해석한 것인데,

아브라함이 믿음이 아니라 아들을 바치는 순종의 행위로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벗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1. 평범함 

우리는 창세기를 읽으면 세상의 기원을 알것 같은 기대가 있고,

역사를 만들어 간 위대한 신앙 인물들 이야기를 들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창세기에 기록된 이야기는 우리의 기대를 배신한다.

창조 이야기를 전한 1-11장은 제외하고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족장사의 이야기를 읽어 보아도 특별난 것은 없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다지 특별난 존재들이 아니다.

역사가 기억하는당대의  유명한 왕 함무라비와 다른 역사적인 인물에 비해서 특출난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아브라함이 남긴 것은 아들 몇명과 막벨라굴 등기 문서 뿐이다.

 

이삭은 더욱 초라하다.

에서와 야곱이라는 말썽꾸러기 자녀들을 남긴 것과 우물 몇개 판 이야기외에 그를 기억할만한 업적은 없다.

 

야곱인들 다른가?

아내 네 명을 통해 13명의 자식을 낳은 것 외에 기억할만한 것은 없다.

물론 그도 세겜에 우물을 파기는 했다.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자랑이 될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셉이 애굽의 총리된 이야기는 역사적인 근거가 모호하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위인전을 기록한다면

이들이 들어갈 자리는 없을 것 같다.

 

족장들의 삶이 보여주는 이 평범함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이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투쟁하고, 바라는 것들을 위해 산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녀로 인해 고민한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 이야기,

재산을 이어받을 권리인 장자권을 두고 싸우는 이삭의 아들들 이야기, 

사랑을 독차지 하려는 야곱과 아내들의 이야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특이한 사건 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과정을 통해서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기적의 시간표가 아니라,

안개처럼 모호하나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일상의 간절함을 통해서 진행된 것이다.

 

신앙은 위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것이 되어야 한다.

 

2. 비범함

별것 없을 것 같은 이 족장들의 이야기가 아직까지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가 영향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번째는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롯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하나님이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택하셨다.

하나님이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족장들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것이 특별한 것이다.

 

두번째는 이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에 반응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사실 아무런 조건이 없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다.

마치 해가 땅의 모든 존재에게 비취는 것처럼 말이다.

요 3;16절이 그것을 증언한다.

하나님이 세상(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족장들의 비범함은 택하신 하나님께 믿음의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롯과 이스마엘과 에서는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족장들이 보여준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신앙적인 반응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정신적인 반응으로 제단을 쌓는 것과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바울은 이러한 정신적인 반응, 믿음에 초점을 두고 해석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제단이 아닌 삶에서도 하나님을 자는 자다운 행동으로 반응했다. 

아브라함과 이사고가 야곱의 삶에서 특징은 말로 전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삶의 과정을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살아갔을 분이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보았다고들 했다.

제단에서 하나님께 보여준 믿음이 삶에서 실천되고 있었던 것이다.

야고보는 제단에서의 믿음보다는

삶에서 실천되는 믿음에 초점을 맞춰 해석한 것이다.

 


산앙인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똑같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일상에서 신앙인의 이름이 특별한 것은

나를 택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안다는 것이고,

그 은총에 응답하여 예배하며 산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필요한 것 한가지는 야고보가 강조한대로

제단에서의 신앙이 삶에서 사라지지 않고 행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신앙인은 평범한 역사 가운데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라는 점에서 비범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더 비범한 이유는

예배때 고백하는 믿음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평범한 삶 속에서

비범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날마다 체득하시라.

이것이 예배하며 말씀을 배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