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족장사와
애굽으로 팔려갔다가 총리가 되는 특별한 사람 요셉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믿음의 역사를 전해준다.
이런 족장사의 흐름을 방해하는 특이한 기록이 창 36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이삭의 장남이자 야곱의 형인 에서의 자손들에 대한 족보이다.
이 족보는 에서와 그가 살았던 세일 지역과
훗날 왕국이 된 에돔의 족보를 전해주는데 43절을 차지하는 방대한 기록이다.
왜 이런 에서의 족보를 기록해야 했을까?
A. 구약성경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그에 따라 살아가는 선택된 백성들의 반응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일에 도움을 얻고자 성경을 읽는다.
쉬운 말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
그런에 성경에 은혜를 끼치는 일과는 상관이 없는 기록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당대에 일어난 일도 기록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들이 전승되다가 책으로 기록될 때는 이미 많은 해석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본다.
즉 성경 이야기는 이스라엘(유대)인들이 신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여 첨가한 내용도 많다는 점이다.
왜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 그들에게 전승되어오던 이야기를 해석하여 편집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의 자녀들에게, 또한 후세대에 은혜를 끼치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님의 선택받은 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성경을 마지막으로 편집한 사람들은
성령님의 감동안에서 그들에게 전해져 온 선조의 신앙 전승들을 취사선택을 것이고,
어떤 내용은 삭제하고, 어떤 내용을 해석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자기들의 신학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사무엘하 11장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가
동일한 역사를 다루는 역대상에서는 삭제된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한마디로 구약 성경은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한 타큐멘터리라기보다는
이스라엘(유대) 신앙공동체의 역사를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믿음의 전승안에서
그 믿음과 율법에 어울리는 신학적인 관점으로 해석한 책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세대에도
성경을 읽는 일에 도움을 주는 신학도 많고 해석도 많다.
그것은 평신도들에게는 교회를 통해서 가르쳐지고
신학도들에게는 신학교를 통해서 가르쳐진다.
그럼으로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에 대한 확고한 관점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 그 자체가 이미 확고한 관점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확고한 관점을 지녔기 때문에
야곱은 선한 믿음의 사람이고,
에서는 신앙의 역사에서 전혀 고려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읽게 된다.
그렇다면 신앙 역사에서 고려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
B. 성경 읽기와 에서의 족보
에서의 족보는
에서의 후손이 에돔 왕국을 이룬 후 8대의 왕 족보가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족장 시대의 기록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족보는 후대에 모세오경이 편집될 때 삽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후대에 편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서의 족보를 왜 넣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족보는 혹평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다만 객관적으로 그의 후손을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에서의 족보는 야곱의 족보보다 자세하다.
에서의 삶을 본받으라는 의미는 아닐터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의 족보가 기록된 이유는
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성경을 읽을 때에 교훈을 주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심은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가 가져야 관점에 대해 교훈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역사와 시대를 바라보는 이스라엘(유대)주의적 관점을 넘어서는 분이시다.
구약성경을 주신 하나님은 구약성경의 주인공인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통로로 이스라엘을 택하셨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모든 인류였다.
이스라엘(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의 하나님이라는 관점으로 구약성경을 해석하고 기록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이스라엘-유대인을 포함하여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성경 곳곳에 기록해 두셨는데,
에서의 족보 이야기도 그 중 하나임 셈이다.
하나님은 택하신 아브라함의 후손 야곱을 사랑하셔서 보호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당대에 존재하는 에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두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떠나간 롯을 구원하신 분이시고,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복을 약속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때,
한 시대와 어떤 특정한 해석된 관점만이 절대적인 것으로 알아서는 안된다.
이스라엘(유대교)적 관점을 넘어서서 모든 존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그런 관점을 성경 곳곳에 기록해 놓으셨다.
B. 성경이 주도하는 성경읽기
오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에서의 족보도 성경이라는 점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성향에 따라 은혜를 받고 교훈을 받는 내용이 다르겠지만,
에서의 이야기, 이스마엘의 이야기, 롯의 이야기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미없고 의미없다고. 여겨지는 에서의 이야기도 성경으로 읽으면 된다.
이들의 이야기를 실패와 범죄를 위한 교훈으로 섣불리 정죄할 필요도 없다.
참된 성경 읽기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대하시는가?
하나님이 왜 저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실까 하는 것이어야 한다.
판단하는 잣대를 가지고 성경을 읽는 것은 유익한 성경읽기가 아니다.
성경 읽기부터 해석학적 관점이 투영되다보면, 정확한 성경읽기는 어렵다.
성경 읽기는 기록된 그대로의 내용을 경중없이, 가감없이 읽는 것이다.
성경 읽기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정확하게 읽는 것이다.
그리고 해석의 과정, 묵상이 필요하다.
성경이 전하는 것은
야곱과 에서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고,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을 고민했던 이들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앞서 살았던 실제적인 존재들이었다고 말해 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편견없이 읽기를 통해 그 삶을 들어와 보라고 초청한다.
그리하여 야곱의 입장에서, 에서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말한다.
그리할 때 야곱의 장점뿐 아니라, 그가 지닌 단점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에서도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성경 읽기는 성경을 읽는 이가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주도권을 가지는 성경 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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