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신학과 선교의 영역에서 위대한 사람이다.
그런데 바울은 유대인으로 있을 때에,
누구보다도 유대 율법에 탁월했고, 유대교를 향한 열정도 대단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스데반을 죽이는 이들의 옷을 지키는 증인이었고,
스스로 대제사장을 찾아가 공문을 요구해서 다메섹에 있는 교회까지 박해하는 열성파였다.
그랫던 바울이 다메섹에 들어 갈 때 어쨌는지 아는가?
눈이 멀었고, 손을 잡아 이끌어주는 사람에게 이끌려 가야만했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바울은 다메섹에서 눈이 먼채로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늘 주도적이고 당당했던 바울이 이렇게 된 것은예수님이 그의 인생에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1. 벧엘에서의 경험
A. 야곱은 전형적인 FM 신앙인(모범 신앙인)이다.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 났고,
순종형 믿음의 사람 이삭이 아버지이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좋은 믿음으로 잘 양육된 아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에 충실한 태도를 지녔을 것이다.
반면에 형 에서가 이런 신앙 전통보다는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눈에 보이는 자신의 가진 것과 능력을 더 신뢰했을 것으로 본다.
잘 아는대로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가로챘고,
그 댓가로 집을 떠나 도망가는 여행자가 되었다.
이때 야곱의 나이는 50-60대쯤 되었을 것인데,
자의반 타의반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
B. 기대치 않은 곳에서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나다.
야곱이 도망가는 길에 루스라는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당연히 들판에서 잠을 잤는데,
꿈에 하늘과 연결된 사다리(계단, 지구라트와 같은 모양일 것)를 보았고,
꿈에 그 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
이것은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으로,
그동안 부모로부터 들어서 배운, 책으로 배운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야곱의 첫 영적 경험이다.
여호와는 야곱에게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재확인하셨고,
"야곱과 함께하실 것과 돌아 오도록 지켜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
하늘과 땅이 연결된 사다리 환상이 이 말씀에 대한 표징이다.
이에 야곱은 첫 영적 경험으로 감격으로
하나님께서 헌신을 약속하고, 십일조 서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베고 잤던 돌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경험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나타냈다.
아마 이때 야곱도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제자 베드로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죽어도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했지만,
배신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영성을 지닌 상태말이다.
야곱도 하나님을 만났지만,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영성이 시작된 것이다.
2. 얍복나루에서의 경험
A. 복을 받은 야곱이 금의환향하다.
벧엘 경험 후 외삼촌으로 집으로 간 야곱은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네 명의 아내와 11명의 아들, 한 명의 딸,
그리고 많은 가축이 있는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 오는데,
이때의 야곱은 장자 축복을 사모한 이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고향으로 오는 길에 한 가지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야곱이 가는 길목에 살고 있던 형 에서와 화해하는 것이었다.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말에 놀란 야곱은
형 에서가 자기를 행하려 온다고 보고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했다.
첫번째 자구책은 엄청난 가축을 선물로 준비한 것인데,
창 32:13-15절을 보면 그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불안하여
일행을 네 떼로 나누어 형 에서를 맞이하게 했는데,
자기 생각에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순서대로 배치했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잘 배우고, 하나님을 경험했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했던 야곱이지만,
아직 그는 자신의 방법과 수단만을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불안이 가시지 않은 야곱은
모두 얍복강을 건너 보내고는 자기는 혼자 얍복나루에 남아 있었다.
B. 야곱을 버리고, 이스라엘이 되다.
그가 형을 피해 떠날 때 하나님께서 밤에 나타나셨던 것처럼,
한 밤중에 홀로 남은 야곱에게 어떤 사람(여호와)이 찾아 왔고,
그와 밤새도록 씨름을 하게 되었다.
이 씨름의 결과는 두 가지 결과를 낳게 되는데,
하나는 야곱의 이름(존재)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 야곱은 야곱(빼앗는 모사꾼)이 빼앗기는 이스라엘(with God, in God)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예어서 볼 수 있듯이
이름이 바뀌는 것은 존재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이 100%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야곱는 취하는 자가 아니라, 내주는 자가 될 것이다.
한밤중에 한 씨름의 두번째 결과는
야곱이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도구의 도움없이는 스스로 걷기 힘든 존재가 된 것이다.
교회를 박해하러 가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었고,
이끌어 주는 사람의 손을 잡고 끌려간 수동태가 되었던 것처럼,
이제 야곱도 자기의 술수로 빼앗던 능동적인 존재에서
하나님의 대제사장 민족을 만드는 존재로서 내어주고 빼앗기는 수동태가 되었다.
야곱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3. 신앙은 평생 동안 은총으로 성장해 간다.
20여년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을 경험한
야곱의 두 번의 영적 경험을 묵상해 보았다.
야곱이 어릴때부터 하나님을 사모했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인 장자권을 위해 살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모범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이렇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계속 성장하면서 깊어진다는 것이다.
신앙의 깊이는 삶을 움직이는 무게추가
나의 방법과 수단에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수동태로 옮겨가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이 땅의 신앙인이 할수 있는 최고의 신앙 경지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드린 기도가 아닐까 한다.
"아버지여, 할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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