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요묵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표(모세)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후손이 이집트로 가서 살다가 4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올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의 후손들은 총리가 된 요셉을 따라 이집트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 당시 역사적인 배경을 보자면,

이 때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 원래 이집트의 왕조가 있었는데.

이민을 온 민족들 중 세력이 컸던 힉스소 민족이

이집트 왕조를 몰아내고 이민족 왕조를 세운 때일 것으로 봅니다.

힉소스 민족은 야곱과 같은 셈족 계열로 보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요셉이 총리가 된 때가 힉소스 왕조때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요셉을 따라 내려간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정착하며 살 때

요셉을 총리로 세웠던 힉소스 민족의 15왕조는 이집트에서 쫒겨났고,

이집트인들로 구성된 이집트의 18왕조가 들어 섰습니다.

출애굽기 1장의 내용은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새로 들어선 이집트 왕조의 바로는 요셉을 몰랐다고 기록했는데,

이 말은 이민족으로 자신들을 통치했던 요셉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이민족인 힉소스 왕조와 싸워 그들을 물리치고 이집트의 18왕조를 세운 바로는

그동안 나일강 삼각주를 차지하며 살던 이민족들을 추방하기 시작했고,

그 땅에 남아 있던 이민족들은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는 이렇게 생각한 듯 합니다.

이민족들이 숫자가 많아지면 옛날 힉소스 민족이 이집트 왕조를 무너뜨린 것처럼

자신들의 왕조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남아 출생 금지를 포함한 산아제한 정책까지 발표하면서 이민족들을 박해했는데,

이 이민족들 중 가 이스라엘 자손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이해를 두고 출애굽기 1장을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박해를 당하던 상황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받는 고난과 억압은

아들을 낳으면 스스로 죽여야 되는 상황과

국고성을 쌓는 강제 노동으로 인해 당하는 억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탄식 소리를 들어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고통의 자리에서 출애굽시키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출애굽을 행하실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출애굽을 인도할까요? 

모세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은 모세를 통해 바로와 싸우게 하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 시키실 계획이셨던 것이지요.


모세는 어떤 사람인가요?

모세는 태어나자 마자 산아 제한 정책에 걸려 나일 강에 버려졌다가

하나님이 도우셔서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섭리로 그리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23절에서 스데반은 말하기를

모세는 40살이 될 때까지 왕궁에서 왕자로 자랐다고 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잘 성장했는지

사도행전 7;22절에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고 했습니다.

출애굽을 인도할 자격에 어울리도록 성장한 것입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인 모세는 이제 일을 해야지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이는 계속 죽어 나가고

그들에게 지워진 노동은 계속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으니

하루 빨리 혁명을 시작하여 출애굽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려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는 지역에 왔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던 이집트 사람을 죽이면서

출애굽을 위한 혁명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을 나일강에서 건지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이스라엘 자손들도 호응할 것이고 일이 곧 시작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나요?

자신의 동족, 그가 출애굽으로 시켜서 자유를 주려고 한 동족이

그를 이집트 왕, 즉 이스라엘 자손의 대적 바로에게 고발을 해 버린 것입니다.

출애굽 혁명을 협조하기는 커녕 그 일을 일러 바친 것입니다.

 

모세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하나님을 믿고 바로에게 혼자 대항해야 할까요?

절망에 빠진 모세는 결국 바로의 권력이 닿지 않는 땅으로 도망을 해야 했습니다.

시내광야를 가로질러 도망가면서

모세는 광야의 황량함보다 출애굽 혁명이 좌절된 것에 더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한 목부가 되었고,

목부의 딸과 결혼하여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낳고 그에게 붙인 이름 "게르솜"에서 그의 심정이 드러납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살아야 했던 시간도 40년이나 됩니다.

이러한 시간은 모세가 가졌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자손의 고난은 여전한데

왜 능력이 크시고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모세가 40살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나섰을 때 침묵하셨던 것일까요?

 

결심만 하시면 

이집트의 바로와 그 나라를 박살내실 수 있는 하나님이

왜 스스로 나서던 모세의 혁명을 돕지 않으시고,

오히려 절망하게 하시고 도망자가 되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 탄식소리를 아시는 주님께서

왜 그때 모세를 들어 일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실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모세가 실력이 가장 탁월했던 40살이 가장 좋은 때였을 것인데,

왜..?

 

연단이 필요해서라고 답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만,

정각 40년 동안 절망하며 꿈마저 잃어버려야 했던

모세의 아픔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견뎌야 하는 또 다른 영역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잘 믿지요?

하나님은 순종하며 잘 믿는 신앙인에게는 복을 주시는 분이시고,

고난 중에 그가 기도하면 들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도 잘 압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계획표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표와 같을까요?

모세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를 향하신, 나의 인생 계획을 향하신,

우리 교회의 성장 계획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계획과 같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성공 패러다임으로 짜여진 나와 우리의 계획과

나와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실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같을까요?

 

나름 똑똑했던 예수님의 제자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면서라도 자기의 뜻대로 예수님께서 움직이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제자들의 계획과 달랐지요.

하나님을 믿는 이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꿈과 계획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과 항상 동일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향하신,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표도

우리의 뜻과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내 꿈과 내 삶을 성공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더 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불일치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진행되는 과정과 때와 방법이 내 계획과 달라

모세가 40년 광야에서 쓰라린 연단을 견뎌야 한 것처럼

우리며 살아가며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수동태가 되어야 하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이기시는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표가 내 생각과 다를때,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하라는 것입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일하실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면 됩니다.

모세의 출애굽 준비 80년 이야기는 이러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