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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묵상/욥기

신앙은 경험한만큼 성장한다. (욥 42:1-6)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욥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사탄도 하나님도 인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소유물과 종이 많은 사람이었고,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했으며,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둔 사람입니다. 그는 생일 잔치를 할 때마다 잔치를 끝내면 혹시 자녀들이 죄를 범하였을까하여 번제로 성결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삶에 커다란 재난이 닥쳤을 때도 훌륭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사탄의 계략으로 그 많던 재산을 잃었을 때에도, 심지어 자녀들을 잃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여기에 더하여 사탄이 몸을 쳐서 큰 병이 나자 아내가 버림받은 인생이라고 조롱했을 때에도 그는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고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믿음의 모델로서 욥이라는 인물을 기록한 것이라면, 그의 이야기는 2장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고난 당하는 1-2장의 이야기는 욥기의 서론에 불과합니다. 욥의 이야기를 통해 교훈하려는 진짜 내용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

동방의 의인인 욥이 큰 재난을 당한 소식을 들은 세 명의 친구들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이 세 명의 친구들도 욥 만큼이나 의롭고 괜찮은 삶을 사는 그 지역의 믿음 좋은 유지들입니다.

욥기 3장부터 31장까지는 고난당한 욥과 이 세친구들간의 대화, 아니 논쟁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들의 논쟁은 “왜 욥같은 의인이 이런 처참한 고난을 당하는가?’였습니다. 이러한 논쟁에서 욥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만 합니다. 그럴수 밖에요. 욥이 가지고 있던 당대의 신앙적 관점에서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왜 이런 일이 그에게 닥쳤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가 배운 신학, 내지는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한 삶은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그의 삶을 지켜 주신다”는 것이였습니다. 욥이 그렇게 살았는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악인들이나 받을 재난을 당했으니, 그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욥은 모르겠다고만 반복하고, 친구들의 공격에 억울하다고만 항변합니다. 

욥의 세 친구들도 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의인이 고난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인생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가 알든 모르든, 고의로 저질렀던, 모르고 저질렀던 상관없이 무언가 하나님께 죄를 있다는 결론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대의 정통 신학자들로 욥에게 나타난 현상(재난 현상)을 보고, 욥이 죄를 지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고 욥에게 권고하기 시작합니다. 네가 모르는 죄가 있을 수 있으니, “그 죄를 자백하라”고 말입니다.이 정통신학자 계열의 이 친구들은 논쟁이 심해지자, 급기야는 욥을 비난하기에 이르고, 여기에 맞선 욥도 친구들을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32-37장까지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는 엘리후라는 다소 젊은 친구도 욥의  세 친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일 뿐입니다.

이 욥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과연 구약의 이 탁월한 이야기꾼은 무엇을 말하려고 이 이야기를 남겨 두었을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배운 신앙과 경험한 신앙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욥과 친구들의 신앙

욥과 세 친구들은 잘 교육받은 모범적인 신앙인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대를 이은 신앙의 가문에서 자랐을 것이고,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잘 교육받았으며, 그뿐 아니라 율법이 명하는 신앙적인 삶을 잘 따라 살아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물려 받은 재산과 영적인 가풍 덕분에 큰 어려움없이 하나님의 복으로 여겨지던 재산과 명예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고, 교육을 받은 대로 원칙적인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후손들에게도 가르침과 덕담을 하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본대로 그들이 가진 교육받은 신앙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서로를 비난하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이들이 가진 신학과 신앙의 한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인생과 하나님이라는 그 신비로운 세계를 자신들이 배운 단 한가지 신학의 틀로만 이해하려다보니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욥의 경험이 남긴 것

오늘 읽은 본문은 논쟁이 끝난 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난 욥의 고백입니다. 여러분이 38-41장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읽어본다면, 그 말씀과 욥과 세 친구들이 벌인 논쟁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우주만물과 세상의 창조섭리 만을 들려줄 뿐입니다. 

그런데도 욥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욥은 분명 무엇인가를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5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니다”. 이 말은 그동안 읽고 들으며 배운 신앙으로만 하나님을 이해하였는데, 이제는 뼈저리게 경험한  인생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라는 분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풍족했던 재산, 행복했던 가족, 안녕, 명예, 건강 등 그동안 당연한 하나님의 복으로 여긴  것들을 잃고 난후, 욥은 그 쓰라린 고통의 시간을 지내면서 그가 가진 신학과 신앙의 깊이와 폭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후 나눈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의로운데, 왜 이 일이 내게 임했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하던 욥이 이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했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그동안 했던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고난이라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은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의 문화처럼 살아 왔던 모범적인  신앙인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체험의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 영적 세계의 다른 면을 체험한 욥은 그가 가졌던 전통적인 신학과 신앙 관습을 넘어 완성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내 중심, 즉 내가 배워온 신학이나 신앙 습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절대 순종하는 것, 이것을 체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깊어진 욥이 보여주는 결론입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욥에게 재산과 자녀를 갑절로 주셨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듯 보이는 고난이 내게 임해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이 결코 손해 입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삶에 임하는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들은 우리를 더 깊고 넓은 신앙의 세계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 은총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배운 신학과 신앙 습관에 만족하고 거기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하면, 그는 무엇에 매이는 신앙인이 아니라, 자유하는 신앙인이 됩니다. ‘나’라는 자아로부터 자유,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자유, ‘안정적인 삶의 보장’으로부터의 자유, ‘명예심’으로부터의 자유’케 됩니다. 

욥기는 당대의 전통적인 신학과 신앙습관을 넘어 더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서도록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 특별히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한다면, 그가 보여주는 신앙은 남다른 자유가 있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그 은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