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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따라 배우는 성경 (맥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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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따라 배우는 구약역사 교재 견본 지도따라 배우는 성경시리즈는 모두 세권으로 되어 있으며, 역사 성경 중심으로 구성된 교재입니다. 교재 주문
지도따라 배우는 모세오경 교재견본 지도따라 배우는 성경시리즈는 모두 세권으로 되어 있으며, 역사 성경 중심으로 구성된 교재입니다. 교재 주문
B.C 75 – 63 / 하스모니안 시대 독립 시대 B.C 75 – 63 이스라엘 땅 살로메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라B.C 76-67는 아리스토불루스 1세의 아내였다가 알렉산더 얀네우스와 재혼했고, 그가 죽은후 왕위를 이어받은 특별한 이력을 지닌 여왕이다. 알렉산드라는 장남인 힐카누스 2세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한후 자신이 왕이 되었고, 바리새파와 대립했던 남편 안네우스와 다르게 바리새인들을 중요하면서 평화로운 통치를 했다. 알렉산드라가 통치하던 짧은 시기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종교법을 지키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의 차남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끊임없이 왕위를 노리고 있었는데, 알렉산드라가 죽후 왕위를 두고 형제간 내전이 일어났다. 장남 힐카누스가 왕위를 이었지만, 동생 아리스토불로스 2세B.C 67-63의 위협에 왕위와 대제사장직을 양보해야..
B.C 140 – 76 / 하스모니안 시대 독립 시대 B.C 140 – 76 이스라엘 땅 이야기 요한 힐카누스 요한 힐카누스B.C 134-104는 그의 아버지 시몬이 지녔던 대제사장직과 군주의 지위를 계승했다. 그는 안티오커스 7세의 압박을 받았으나, 셀류커스 왕조가 내분으로 힘을 잃게 되자, 주변국을 점령하면서 영토를 넓혔다. 알렉산더의 영향으로 세워진 헬라주의 국가들이 힘을 잃고 있었고, 아직 로마의 힘이 분명하게 미치지 못했던 정치 세력의 공백기에 요한 힐카누스는 598년부터 분리된 남쪽 지역의 이두매를 병합시킨후 유대교로 개종시켰다. 요한 힐카누스가 이두매를 정복하고 책임자로 세운 이가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터이다. 힐카누스는 사마리아와 세겜을 정복한후, 세겜에 세워졌던 그리심산 성전을 파괴했다. 요한 힐카누스 시대를 지나면서 하시딤으로서 마카비 왕조..
B.C 160- 140년대 / 마카비 혁명과 독립 시대 B.C 160- 140년대 마카비 항쟁 모데인이라는 마을에 할례 금지령을 확인하고, 우상 제물로 제사를 강요하려는 셀류커스 왕조의 관리들이 왔을 때, 마타디아스라는 인물이 그들을 죽임으로서 셀류커스 왕조의 박해를 향한 마카비 항쟁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항쟁이 알려지면서 하시딤들이 몰려왔고, 마타디아스의 아들 유다가 지휘관이 되면서 본격적인 저항 혁명이 시작되었다. 유다를 지휘관으로 항쟁하던 이들은 결국 예루살렘을 점령했고(아크라는 제외), 예루살렘 성전을 수복했고 성전 제의도 다시 시작했다.B.C 168 이 날을 기념하는 날이 하누카로(성전수복일)이다. 이로서 유대인들의 종교자유가 회복되었다. 마카비 혁명군은 지휘관 유다의 죽음에도B.C 161 불구하고 여기 멈추지 않고, 동생 요나단을 중심으로 계속 저..
B.C 200-160년 / 셀류커스 왕조 시대 B.C 200-160년 유대 사회의 변화 지배자가 셀류커스 왕조로 바뀌면서 유대 사회는 대제사장을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토비아스 가문이 셀류커스 왕조를 지지하면서 왕으로부터 대제사장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제사장직의 교체는 유대사회에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셀류커스 왕에 의해 대제사장이 임명이 되면서, 오니아스 3세(야손)이라는 이가 왕에게 엄청난 돈을 주기로 하고 다시 대제사장직을 사오게 된다.B.C 175 그리고 그는 대제사장직에 올라 유대 사회에 급격한 헬라화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3년후에 다른 사람 메넬라우스가 더 많은 돈을 주기로 하면서B.C 172 야손은 대제사장직을 메넬라우스에게 뺏기로 요르단 동편으로 도망해야만 했다. 대제사장직이 사독 계열의 계승직에서 매매가 가능한 ..
지도따라 배우는 신약성경 교재 구입 교재견본 지도따라 배우는 성경시리즈는 모두 세권으로 되어 있으며, 역사 성경 중심으로 구성된 교재입니다. 교재구입
B.C 302-200년 / 헬라 제국 통치(프톨레미-이집트 왕조 시대) B.C 302-200년 유대인들의 상황 프톨레미 왕조 시절에 유대인들의 상황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이 시기에 유대 땅은 부유하고 안정된 프톨레마 왕조의 일원이 되어 평화로운 1세기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프톨레미 왕조에서 파견한 총독 행정관이 정치와 군사 행정을 담당한 반면에, 유대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성전 제의와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은 대제사장과 유대 평의회(게르시아)를 중심으로 일종의 자치를 누리던 시기였다. 프톨레미 왕조가 유대 땅을 다스리던 당시 유대 사회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대제사장은 다음과 같다. 이 당시 유대인의 제사장 총수는 1500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대제사장 히스기야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애굽으로 이주했고, 그를 이어서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으로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