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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따라 배우는 성경 (맥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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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30-300년/ 귀환공동체 시대(헬라 제국 시대) B.C 330-300년 알렉산더(헬라) 시대 마케도냐를 통일한 알렉산더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면서 유대땅에서는 전쟁 한번 없이 통치권이 알렉산더 제국으로 넘어 갔다. 알렉산더는 수리아를 정복한 다음 지중해 동부 해안을 따라 저항하는 두로와 가자와 사마리아 등을 정복하면서 이집트로 갔는데, 이집트는 알렉산더를 해방자로 여기고 바로로 추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알렉산더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지는 않은 듯하고, 대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대표단이 가자를 공격하는 알렉산더를 만나 복종을 표시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후 사마리아가 알렉산더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고,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공격하러 가는 길에 파르메니오에게 사마리아를 치게 해서 사마리아는 정복을 당했다. 이때에도 알렉산더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
B.C 500-330년 / 포로 귀환공동체(페르시아) 페르시아 제국 고레스에 의해 시작된 페르시아 제국은 바벨론과는 다르게 그들이 정복하고 또 물려받은 각 지역의 종교와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정책 결과로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과 빼앗겼던 성전 기물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또한 페르시아 제국은 구약성경 마지막 시대인 유다와 예루살렘 멸망 이후 시대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역사서인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가 페르시아 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학개, 스가랴가 역시 페르시아 제국에 재건된 성전과 관련되어 있다. 성경에 아하수에르로 기록된 크세르크세스 1세는B.C 485-464 에스더를 왕비로 맞은 왕이다. 또한 유다인을 멸절하려는 아각 사람 하만의 음모에서 구원된 것..
B.C 580-500년, 유대 포로시절, 페르시아 시대 바벨론 침공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이B.C 625-605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여 앗수르를 정복했고B.C 605, 아들인 느부갓네살은 왕이 되어 정복 원정에 나서 유다를 정복했고, 속국으로 만들어 조공을 받았다. 그후 유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하자, 다시 와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시켰다.B.C 586 B.C 580-500년 남왕국 유다의 멸망 요시아 다음 왕이 된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시드기야는 모두 요시아의 아들이고, 여호야긴만 그의 손자이다. 이들은 때로는 애굽을 의지하였고, 때로는 바벨론을 의지하는 정책을 쓰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멸망당했다.B.C 586 이로써 출애굽 공동체의 명맥과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이어오던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마지막 나라인 유다마저 역..
720-580년 / 남왕국 유다의 멸망(바벨론시대) B.C 720-580년 1. 남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남왕국 유다는 선한 왕이었던 웃시야(아사랴)와 요담의 긴 통치 이후, 아하스라는B.C 732 악한 왕에 의해 온 나라에 우상의 제단이 세워지고,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는 상태였다. 아하스는 탁월한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대신에 앗수르를 의지하는 정책을 펼쳤고, 우상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세우는 악행을 행했다. 아하스를 이어 왕이 된 히스기야는B.C 716 다윗 왕조에서 가장 선한 왕으로 평가받은 왕으로 종교적인 개혁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면서도 끝내 예루살렘을 지켜낸 왕이었다. B.C 701 유다 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지 않은 이유 중 앗수르의 왕궁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앗수르가 간섭할 ..
B.C 750-720년 / 북이스라엘 멸망(앗수르 시대) B.C 750-700년대 1. 북왕국, 이스라엘의 혼란 예수님 오시기 700여년 전, 출애굽 공동체의 한 축인 북왕국 이스라엘은 세력을 넓히고 있던 앗수르 제국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런 외적인 위협뿐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은 예후 왕조의 여로보암 2세의 전성기를 끝으로 통치 세력의 무능함으로 혼란기에 빠져들면서 위기를 겪게 되었다.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가 살룸에게 죽었고, 살룸은 한달 후 므나헴에게 죽었고, 므나헴은 아들 브가히야까지 12년을 다스렸지만, 베가에게 죽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베가는 앗수르의 위협에 맞서 아람왕 르신과 동맹을 맺는 등B.C 733, 이스라엘을 지키려고 했지만, 그도 약 10여년의 통치후 호세아에게 죽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앗수르와 애굽 양대..
성지사진 - 요단강 베다니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곳으로 알려진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요 1:28)"는 사해에 북쪽으로 약 6-7㎞, 여리고에서는 사해방면으로 약 7-8㎞가량 요단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모압평지에서 흘러드는 지류를 만나는 곳에 있다. 현재 이곳에는"세례자 요한 수도원"으로 불리는 동방 정교회 소속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세례를 받으셨다는 작은 지류는 요르단쪽과 이스라엘 쪽에서 서로 마주보는 곳에 있다. 이곳은 구약 성경에서는 모압 평지에 속한 곳으로 주변에는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곳으로 알려진 텔 마르 엘리아스 언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요단강 베다니가 위치한 모압 평지와 여리고 풍경 세례 요한 기념 수도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곳으로 추측하는 곳 엘리야와 관련된 유적지
성지사진 - 팔복기념교회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팔복 기념교회는 갈릴리 호수로부터 약 175m 정도 솟아 올라간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가버나움에서 직선거리로 2km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A.D 4경부터 이곳에 팔복 말씀및 산상수훈 기념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여 파괴와 건축을 반복하다가 현재의 기념교회는1936-1938년까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의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안토니오 바를루치의 설계를 바탕으로 세운 기념교회로 팔복 말씀을 상징할 수 있도록 팔각형 구조로 된 건물이다. 이곳에는 팔복기념교회 외에 현재도 수도사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전통적인 형식의 수도원과 채플실 등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사진) 예수님의 제 2고향 - 가버나움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아래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주 작은 마을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공생애 대부분을 이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사역하신 것으로 복음서가 전해준다. 그래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제 2의 고향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 당시에는 가버나움에 세관이 있었고 로마 군대의 백부장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규모가 있는 도시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