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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따라 배우는 성경 (맥잡기)/역사지리자료실

B.C 200-160년 / 셀류커스 왕조 시대

 

B.C 200-160년

 

유대 사회의 변화

지배자가 셀류커스 왕조로 바뀌면서 유대 사회는 대제사장을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토비아스 가문이 셀류커스 왕조를 지지하면서 왕으로부터 대제사장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제사장직의 교체는 유대사회에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셀류커스 왕에 의해 대제사장이 임명이 되면서,

오니아스 3세(야손)이라는 이가 왕에게 엄청난 돈을 주기로 하고 다시 대제사장직을 사오게 된다.B.C 175

그리고 그는 대제사장직에 올라 유대 사회에 급격한 헬라화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3년후에 다른 사람 메넬라우스가 더 많은 돈을 주기로 하면서B.C 172

야손은 대제사장직을 메넬라우스에게 뺏기로 요르단 동편으로 도망해야만 했다. 

대제사장직이 사독 계열의 계승직에서 매매가 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마카비 혁명을 통해 유대 사회의 지도자가 된 하스몬 가문이

사독 계열이 아니면서 제사장직을 차지하는 바람에 그에 반발하는 그룹이 생기게 되었다. 

하스몬 가문이 대제사장직을 차지하면서,

그 일에 반대하여 성전을 떠나 광야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이들이 엣세네파이다.


셀류커스 왕조의 유대인 박해

B.C 200년대를 지나면서 유대 사회는

지배자가 프톨레미 왕조에서 셀류커스 왕조로 바뀌었다.

그러나 같은 헬라 제국이었던 셀류커스 왕조도 초기에는 프톨레미 왕조와 같은 정책을 사용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입은 손상을 보존해 주려고 3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는 등 친화적인 정책을 썼다. 

그러나 셀류커스 왕조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졌고,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내야 하는 문제로 제정이 필요하게 되자,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을 탈취하려고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3대 왕인 셀류커스 4세B.C 188-175는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을 약탈하려 했고,

다음 왕인 안티오커스 4세는 대제사장직을 팔면서 돈을 거둬 들였다.

특히 안티오커스 4세B.C 175-163는 애굽을 공격하여 정복했으나,

신흥 강지인 로마의 경고를 받고 물러나면서 예루살렘약탈했고,

예루살렘에 군대 주둔지인 아크라를 만들면서 유대 사회에 헬라화를 강요하였다.  

유대인들이 이 일에 반대하자

안티오코스 4세는 더 강력한 박해 정책을 펼치는데,

그것은 성전 제사 폐지할례 금지령이었고,B.C 168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하였다.

나아가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를 위한 제단을 세우고

돼지피로 제사를 드리면서 유대인들의 헬라화를 강요했다.

 

 


마카비 혁명 발발

안티오커스 4세가 유대 사회를 헬라화하려는 목적으로 성전 제사를 금지하고,

할례를 금지시키면서 유대 사회에큰 파문이 일어 났다.B.C 168 

그렇지 않아도 유대 사회는 헬라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헬라와의 문제를 두고 갈등하고 있는 사회였다.

많은 경우 자연스럽게 헬라화를 받아 들였지만,

헬라화되어가는 문화로부터 유대교를 지키려는 사람들도 당연히 생겨났다.

이들을 일컬어 하시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헬라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유대교의 율법과 전통, 성전 제의를 수호하려는 사람들로서,

이러한 사상을 공유하는 이들에게서 엣세네파바리새파사두개파 등의 파당이 출현한 것으로 본다.

헬라화를 강요하는 안타오커스 4세의 박해는 필연적으로 이들의 저항을 불러 왔고,

이들은 마카비 가문과 힘을 합해 약 3-4년 후에 모든 것을 박해 상황을 끝장냈다.B.C 164

 


로마 제국의 등장

이 당시 세계 정세를 보면 로마가 세력을 넓히고 있던 시기로,

로마는 마케도냐 제국을 정복했고,B.C 200-168 

그 이후 소아시아 지역으로 지배 영역을 넓혀가면서

소아시아 지역의 지배자인 셀류커스 왕조를 압박하고 있었다. 

로마는 기원전 190년에 마그네시아에서 셀류커스의 군대를 이긴 후,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했고, 셀류커스 왕조의 군대를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했다. 

그후 로마는 셀류커스 왕조를 압박하여 조약을 맺었고,

왕자들을 볼로모 잡아 로마에 있게 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셀류커스 왕조를 크게 압박하던 시기였다.  

특히 로마는 셀류커스 왕조로 도망간 한니발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는데,

한니발은 로마의 압력에 자살했다.B.C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