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은 세가지 비유를 전해주는데,
신랑을 기다리면서 등불은 준비하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 이야기와
먼 길을 떠나는 주인에게 각각의 재능대로 달란트를 위임받은 세 사람 이야기와
종말의 때에 양과 염소로 구분되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먼저 열 명의 처녀들의 비유에서
바울이 고후 11:2절에서 교회를 처녀로 불렀던 것처럼
처녀는 복음을 받아들인 기독교인들로 볼 수 있다.
신랑을 기다리는 상황은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며,
기다림이 길어지는 것은 재림이 기대만큼 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지연되는 상황을 뜻한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들리는 신랑의 도착 소식은 재림은 분명히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이 비유에서 핵심은 등불을 지속시키는 기름이다.
다섯명의 처녀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를 했고, 다섯명은 그러지 못했다.
이 비유에서 두 그룹의 운명을 갈라 놓는 기름은 무엇일까?
예로부터 "믿음", "선한 행실" 등이 기름일 것으로 해석되어져 왔다.
이렇게 해석할 때 한가지 문제는 기름을 가게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믿음과 선한 행실이 그러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비유는 그 목적을 따라 중요한 논점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
세세한 것까지 맞추어 해석하다 보면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 비유의 강조점은 재림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지연되는 재림과 그로 인한 조롱(박해)과 실망을
인내하면서 신실한 믿음으로 이겨낼 것을 강조하는 비유로 보는 것이 옳다.
캄캄함 밤이 지속되더라도 그 밤을 밝힐 등불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재림이 지연되는 시간이 계속되더라고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그 자세를 강조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고자 하는 목적이 이 비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두번째 비유는
특별한 달란트를 받은 세 사람에 대한 비유이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신 비유로 볼 수 있다.
주인으로부터 받은 거금의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무한한 은사를 의미한다.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여 이윤을 남김 이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한 이들을 말할 것이고,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은 사람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여 침묵했고 전하지도 않은 이들을 향한 경고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제자들에게 주신 은사는 엄청난 것이고,
신실한 섬김과 순종으로 행하며 섬길 때에,
이 땅에서는 두배를 남기는 풍성한 삶을 누리고,
내세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큰 상급을 받아 누리게 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세번째 비유는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행할 일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민족을 모으고 심판하실 때
칭찬들을 양과 저주받을 염소로 구별할 것인데,
그 기준이 "작은 자들에게 행한 행함" 여부이다.
이 비유에서 "모든 민족"이라고 할 때,
이 "모든"이라는 용어가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재림 시에 예수님 앞에 있는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모르는 이방인이 되는 셈이다.
"주렸고, 목말랐고, 나그네 되었고, 헐벗었고, 병들었고, 옥에 갇혔던" 작은 자들은 누구인가?
한가지 유력한 해석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받아들이고 대접하고 돌본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대접하고 돌본 것이 된다고 하셨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중에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배척했고, 거절했던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고, 복음을 배척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꼐 받을 복이 없고, 받을 벌만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문제를 논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교회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비유로 보아야 한다.
물론 이 비유는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비유이다.
약자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은 기독교 세계만의 진리가 아니라, 보편적인 진리이다.
마태는 이 보편적인 진리를 이렇게 확장하는 것이다.
약자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이 예수님께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삶이 복음을 따라 사는 기독교인들의 진정한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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