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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의 성경해설서

가난 마 5:3, 눅 6:20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오늘 말씀은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말씀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불교의 ‘화두’처럼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말씀일 것이다. 예수님의 거의 모든 말씀들은 해석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해석하고 분석할 대상이 아니라 듣고 복종해야 할 말씀을 해석하려 할수록 더 혼란하고 복잡해진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하고 순수한 말씀이기 때문에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이 말씀을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할수록 복잡해지고 그러면 더 복종하기 어렵게 된다. 그 결과 말씀이 실천되지 않아 아무런 힘도 없는 말씀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에 살을 붙여 보기로 한다. 예수님은 ‘정말 아무 것도 없이 가난한 사람은 하늘에서 주는 진정한 복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은 궁극적 성취에서 오는 기쁨을 의미한다. 복은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은 축구 선수나 복권에 당첨된 순간처럼 하나님의 심판 앞에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궁극적 환호의 순간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의미도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고 독립해서 살아갈 수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지금 여기서 환호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권력이 그들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에는 적당히 가지고 있는 상대적 빈곤자(penes)도 있고 진짜 아무 것도 없는 절대적인 극빈자(ptochos)도 있다.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아사상태의 절대적인 극빈자, 즉 전적으로 타자의 도움에 의하여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절대 가난한 자(ptochos)를 말한다. 성경은 종종 가난을 소유의 문제로 표현될 뿐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표현한다. 가난한 자는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기에, ‘I can't’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거나, 타인의 도움이 있다하여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 상황 - 예를 든다면 나병에 걸려 있거나 아니면 죽음에 임박에 있거나 - 속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오직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존재양식, 그것이 가난이다. 

 

   역으로 힘과 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가 있고 아무 것도 없으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맡기지 않는 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난은 눈에 보이는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마태복음은 가난을 물질적 문제를 넘어 정신적, 존재적 문제로 설명하기 위하여 가난 앞에 ‘심령’이라는 단어를 첨가하였다. 

 언제나 농도가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지배하게 되어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자이며 그의 농도는 아주 강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농도보다 더 강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역까지 들어가 그 영역까지 차지하고 지배하려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I can't’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절대 가난을 소유한 자로 그의 농도는 너무나 흐려 거의 농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농도가 너무나 강하게 작용됨으로 그 사람 속으로 하나님이 가득히 차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온전히 지배하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겉으로는 가난한 것처럼 노력하고 가난하게 보이지만 어중간하게 가난한 자들이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지만 우리의 존재의 강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완전히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나님의 영역을 누르고 있다.  그러나 진정 가난한 자들은 자기의 농도가 없으므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께서 “복이 있도다, 가난한 자는 그들이 지금 하나님을 온전히 소유한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아는 것, 소유한 것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그것이 더욱 무거워지면 다른 어떤 것도 자신 속에 채워질 수 없으며 다른 것들까지 침범하게 된다. 그 사람은 부자이다. 그러나 주님과 온전히 사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벼워지는 사람이다. 그 존재의 무게를 줄여 자신이 없는 것처럼 가벼워진다면 주님의 모든 것들이 그 속에 가득 찰 것이다. 그가 진정 복된 자이다.

 

 

미산 김춘기 설교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