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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의 성경해설서

당신이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면 마 4:1-11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일진대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모든 oo식구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올 한 해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라는 말씀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이 말씀은 그 뒤에 나오는 ‘주님을 본 받으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요13:15). 오늘 우리가 묵상하려는 것은 본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그 내용이 주님의 시험이야기에 나옵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3가지 시험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빠질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사탄의 시험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를 보이신 것입니다. 좀 더 넓게 생각하면 그 시험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우리 모두가 빠질 수 있는 핵심적인 시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시험은 언제 오는 것일까요. 4:1의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는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시험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힘든 상황일 때 찾아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힘들지 않을 때는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는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어려움이 오면, 특히 인간의 본능에 빠질 수밖에 없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우리도 주님을 유혹한 사탄의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는 참된 신앙 이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 시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큰 고난의 상황에서야 우리가 참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가 판가름 납니다. 

우리가 본 받지 말아야할 사탄의 시험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입니다. 사십일을 금식한 사람 눈에는 모든 것들이 먹을 것들로 보일 것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먹을 것들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시험을 헨리 나우엔은 ‘현실에 충실하라’는 것으로 해석합니다(헨리 나우엔,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란노).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기적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메시야가 해야 할,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중심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려 내도록, 이런 급박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기적적인 능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주된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결은 자신에게는 개인적 행복을 주거나 영웅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주님은 이런 시험에 대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급박한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 궁극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사람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안겨다 줄 그런 일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적 증표를 보여 줌으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이라는 유혹입니다. 주님은 이런 유혹을 공생애 동안 여러 번 당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에게 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때 주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나의 표적과 날씨의 표증, 즉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나쁘겠다는 표증만 보이셨습니다(마16:1-4). 주님은 사회에 팽배한 스타의식과 개인주의적 영웅주의를 버리는 것임을 보이셨습니다. 이런 영웅주의는 우리가 빠질 수 있는 가장 쉬운 유혹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기를 얻으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메시아로, 참 그리스도인으로 칭송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는 시험입니다. 바로 더 큰 힘을 얻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메시아의 과업을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 힘, 권능, 권력이라는 유혹을 거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힘만 있으면 모든 과업을 아주 멋지게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대다수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유혹에 빠지며, 그것을 보고 신앙생활을 한 우리도 이 힘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이 점에서 “가장 큰 유혹은 힘을 복음 선포에 가장 유용한 도구로 간주하려는 것입니다”(헨리 나우엔, 77). 그 결과 성공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갈수록 하나님의 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더 큰 힘을 가지려하고, 교회는 더 화려하게, 더 크게 지으려 열을 올리고,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가져서 힘을 키우려 합니다. 그것들을 하나님의 과업의 성공으로 자랑합니다. 

이 모든 시험-현실적 문제들의 해결, 인기, 힘-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모두가 놀라운 기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문제 해결도, 인기도, 큰 힘도 기적을 통하여 나타내려 하는 것이 사탄의 시험입니다. 기적적이지 않은 평범한 일상적 사건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메시아적이거나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의식을 사탄은 우리에게 집어넣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방법들을 합리화합니다. 그 증거로 사탄은 유혹을 할 때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일진대’를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이런 일들을 행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대로 행하게 되면 참 메시아처럼, 참 그리스도인처럼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유사 메시아이며, 유사 그리스도인이며, 유사 교회가 되어 버립니다. 

 

주님이 시험받으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끊임없이 사탄은 유혹합니다. ‘만일 네가 그리스도인 이라면’ 현실의 문제들을 기적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만일 네가 그리스도인 이라면’ 모든 사람들의 눈을 확 끌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만일 네가 그리스도인 이라면’ 막강한 힘을 가지고 큰일들을 행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살펴보면 사탄의 말이 옳아 보입니다. 우리가 너무 무력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시험을 거부하고 이기셨기에 우리도 그 분의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사탄의 이런 본을 버리고 예수의 본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다음 설교에서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미산 김춘기 설교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