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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큐티 교재(필사&정리)/마태복음

마 3장 - 세례 요한...

 

 

마태는 예수님께서 애굽에 피신 가셨다가 나사렛으로 돌아온 이야기 후

약 25여년을 건너 뛴 다음

성년이 되신 예수님께서 역사의 무대의 등장하시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쿰란공동체 유적지에서 사해 방향을 보고 찍은 풍경, 오른쪽 메마른 지역이 유대광야이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예수님께서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시는 무대는 

유대 광야에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는

세례 요한의 세례 운동이었다.

 

말라기 이후 약 400여년 만에 등장한 광야의 예언자 세례 요한,

마태는 그를 이사야 40:3절에 기록된 예언자로

"주의 길(본문에는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대로)을 예비하는 자로 소개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나이가 많았던 제사장 가문인

사가랴-엘리사벳의 가문에 하나님이 사명을 주셔서 태어난 사람으로 누가는 전해 준다.

세례 요한의 탄생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을 낳는 것,

엘가나와 한나가 사무엘을 낳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태어난 후 광야에서 등장하기까지 그의 생애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당시에 예루살렘에서 봉사하고 있던 제사장 가문에 속했었는데,

어찌하여 광야로 같는지,

또한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 제사에 반대하면서 광야로 나가

쿰란공동체를 만든 의의 제사장 그룹과 유사한 선포와 세례 행위를 하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다.

학자들은 분명한 증거 자료는 없지만,

세례 요한과 쿰란공동체는 서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활동 무대가 다같이 광야 지대이고,

물로 몸을 씻는 세례를 강조하고,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을 적대시하는 것에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어찌되었든 예수님과 비슷한 연배였을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세상을 향해 "회개"를 선포했고,

회개한 이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라는 교훈과 함께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아마도 세례 요한은 공동체를 만들지 않았겠지만,

세례 요한을 따르는 제자 그룹이 생겼고,

이합집산을 거치면서 점점 소그룹으로 되어 갔지만,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 때 에베소에서 세례 요한 제자들을 만난 것을 나온다.(행 19장)

 

세례 요한이 남긴 메시지는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장면에 나오는 설교가 전부이다.

임박한 진노, 나무 뿌리에 놓인 도끼, 타작 마당 등..,

임박한 종말론적인 표현들을 나타내는 선포와 경고가 중심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여전히 구약성경의 예언자의 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새로운 죄사함의 방법을 선포했는데,

당시의 정통적인 죄사함 방법인 예루살렘 성전 제사 대신에

회개하고 몸을 물로 씻어냄으로 얻게 되는 죄사함이었다.

예루살렘 종교 당국자들의 눈에는 이단으로 보였을 이 죄사함의 기원은 알수 없으나,

죄아 부정한 것을 제거하기 위해 물로 씻거나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구약성경과 쿰란공동체의 의식에 자주 등장한다.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더라."

 

광야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채우시는 것만으로 살았다는 표현이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와 비슷한 성향의 예언자인데,

엘리야는 하나님이 필요를 채우셨지만,

세례 요한은 자연으로부터 의식주 필요를 취했다.

 

의식주를 위해 갖추는 것들이 단순할수록

영적인 영역은 더 풍성해진다.

 


 

"독사의 자식들아."

 

세속화되고 소유에 중독되어 버린

종교인들을 향해 외친 세례 요한의 일갈이다.

그는"하나님은 너희 대신에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하시기를 원한다?)"고... 

 

삶에 진실된 회개가 없고

말씀에 반추되는 삶의 변화도 없고,

신앙이라는 새로운 탐욕에 매여 교회와 종교를 개인의 소유로, 

그 섬김의 자리를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만들어

그것을 지키려고 포악스럽게 싸우는 소위 종교인들을 향한

광야 예언자의 일갈이다.

 

도끼자루의 심판을 외쳐도 무감각한 종교인들...

회개와 돌이킴이 없다면 이미 죽은 존재들이다.

 

회개란 입술의 나불댐이 아니라,

살아가고 행동하고 소유하고 공유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나의 생각과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말씀에 깨달음과 믿음을 따라,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말씀을 따라 사는 방향에 서는 것이 회개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기 전에

굳어져 버린 그 땅의 종교와 사람들의 심성을 깨우고 흔들기 위해 던져진

하나님의 폭탄과도 같은 예언자였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준비하시는 방식이기도 하다.

 

소유화되어가고, 화석화되어가는

이 땅의 종교 권력을 뒤흔들

세례 요한과 루터 같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필요한 시기이다.

 

 


두번째 묵상... 마3:13-17

 

세례 이야기는 탄생 이야기와 열두살때 성전을 방문하신 이야기를 제외하고

성인이 되신 예수님에 대한 첫번째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 운동"을 펼치고 있던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 가셔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모압평지에서 바라본 베다니(세례 받으신 곳)와 여리고 풍경

"우리가 이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성인이 되신 예수님은

사시던 나사렛을 떠나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으로 가셨고,

세례 요한에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 때문에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하던 당시에 두어가지 문제가 제기된듯 하다.

 

하나는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었는가?

다른 하나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렇다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더 큰 자인가? 

 

정경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보는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를 추가 설명없이 간략하게 전하고 있는데 반해 (막 1:9-11)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에서 세례 요한의 이름을 삭제했을뿐 아니라,

세례식이 있기 전에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것으로 전해 준다. (눅 3:20-22)

누가도 위의 논란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가 세례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한 것은 나름대로 내놓은 해법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반해 마태복음은 보다 분명하게

당시에 제기되던 세례식 문제에 대해 나름의 신학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그 일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영역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마 21:32절에 요한이 전한 것을 "의의 도"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태가 세례 이야기에 14-15절을 첨가한 것은

그 당시 제기되던 위의 문제들에게 대한 마태의 응답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으로 오실 때에 여자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으로 오셨듯이,

세상에 등장하실 때는 세례 요한이 펼치는 세례 운동을 빌려서 그렇게 하셨다고 볼 수 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나타난 현상인데,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그동안 봉인되었던 구원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신 것처럼

예수님으로 인해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열어가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려 주는 것이다.

 

세례 사건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해서도 볼 수 있지만,

이 이야기의 초점은 

세례 요한을 통해 수행된 예수님의 세례식이

이 땅에 예수님으로 인해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여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세례식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펼쳐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