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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큐티 교재(필사&정리)/창세기

창 23장 - 거룩한 결박(을 푸셨나이다!)

2장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로 죽었고,

남편 아브라함이 아내를 장례지내기 위해 

그 지역 토착민들인 헷 족속으로부터 묘지로 쓸 굴을 구입하여

아내를 장사 지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사라가 죽고 나서야 매장지로 쓸 굴을 사고 있다.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무덤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아브라함이 헷족속으로 막벨라 굴이 딸린 토지를 구입하는 장면은

당시의 거래 문화를 알게해 주는 좋은 자료이다.

많은 증인들이 있는 공공의 장소인 성문에서(10절)

묘지로 쓸 굴과 땅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헷족속이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는 말은

"원하는 곳을 택하여 매장지를 구입하라"는 말이고,

아브라함이 원하는 토지와 굴의 주인이

"내가 내 동족 앞에서 그 밭을 당신께 드리겠다."라는 말은

"얼마를 내겠느냐"는 말로 보면 될 듯하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토지의 가격도 흘려서 거래를 성사하는 당시의 상거래 문화,

어쩌면 오늘날에도 유목민들 사이에 보여지는 거래 기술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다른 여인으로부터 낳은 딸이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이 당시에는 유목민들에게는 아내가 여럿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 아브라함과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즉 그녀의 나이 65세때까지 여전히 아이를 낳지 못했다.

이 당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여인으로서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일로

어찌되었던 사라는 자기 소유의 자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 노력중 하나가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었을 것이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자기 소유인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은 것도

여인으로서 자식을 소유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창 25장 1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두라라고 불리는 후처를 통해 아브라함은 6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 일이 사라의 죽음 이후에 기록되어 있어서 

사라가 죽은 후 그두라를 후처로 맞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사라가 죽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37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그두라는 사라 생전에 아브라함이 취했던 후처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라의 아버지 데라가 다른 아내를 통해 그녀를 낳았듯이...)

 

그렇게 볼 때,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라는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

아브라함이 애굽왕에게, 아비멜렉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사라를 쉽게 내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종에게까지 멸시를 당했으니,

자식 문제로 그녀가 겪었을 마음 고생을 알 수 있다. 

 

성경에는 사라가 단 한번 웃었다고 전한다.

물론 사라가 평생에 웃을 일이 없었을까 마는

그녀가 한 번 웃은 것은 이삭을 낳았을 때였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웃음은 사라가 그동안 당했던 마음 고생과 수모를 한꺼번에 치유해 주는 웃음이다.   

그리고 사라의 다음 이야기는 그녀의 장례 이야기이다.

 

사라의 삶을 깊이 묵상해보자면

사라는 아브라함 가문에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난을 당한, 거룩한 결박(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행하시는 제한들)에 묶인 존재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졌을 때,

사라에게 행해졌던 거룩한 결박이 풀렸고,

그리고 그녀의 삶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하나님을 따라 나선 이들은

누구나 이 거룩한 결박을 경험하게 된다.

거룩한 결박을 통하여 참 신앙인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보통 아내를 사랑하지만, 자녀를 낳아 주지 못하는 아내를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을까?

두번이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는 일을 보면서 그런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어찌보면 소홀히 여겼을 아내 사라이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셨다.

아들 이삭을 통한 후손 약속은 물론이거니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첫 증표인 가나안 땅을 소유로 등기하는 이야기도

사라의 죽음의 계기가 되어 성취되었다. 

사라는 자기의 매장지로 구입할 돈 은 사백 세겔도

아비멜렉 왕에게 끌려 갔던 일로 받은 은 천개로 이미 마련해 두었던 셈이다. 

(물론 22장에 아비멜렉에게 암양을 주고 브엘세바 우물에 대해 소유권을 인정 받기는 하지만,

공공이 장소에서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구입은 막벨라 굴이 처음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후손, 땅, 복이었는데, 눈에 보이는 약속인 후손과 땅은 아내 사라를 통해서 이루어 주셨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사라도 믿음의 조상으로 불릴 자격을 가진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가 우리가 불러야 할 정식 이름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먼저 땅에 묻었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아내를 먼저 땅에 묻고 나서 아브라함은 거의 40년을 더 살았지만,

아들 이삭을 장가보내는 일 외에는 성경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도 죽었다는 이야기만 전한다.

아내 사라가 없는 아브라함의 삶이 그래서 쓸쓸해 보인다.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배필이 그래서 소중한 것이리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