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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큐티 교재(필사&정리)/출애굽기

출애굽기 1장 -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

출애굽기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이어 받아 진행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창세기 마지막 장인 50장과

출애굽기 1장은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야곱부터 야곱의 5대 후손이 모세가 태어나는 시기까지의 공백이 있다.

 

야곱의 후손이 그 땅에 대기근이 임하자

이집트에서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이라는 형식으로 이집트로 이주했다.

이집트로 이주할 당시에는

야곱의 아들뿐 아니라 손자들까지 태어난 상태였고,

내려간 사람이 모두 70명이라고 나오는데,

이 숫자에는 아들들의 아내와 그들의 딸 이름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니 성경에서 숫자는 정확한 숫자라기 보다는 상징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면 된다

 

이집트 왕조에서 이방인인 셈족 계열의 요셉이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역사적인 근거는

이 당시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는 왕조가 이집트인이 아니라,

요셉과 같은 셈족 계열인 힉속스 족이었기 때문이다.

힉소스 족은 이집트 왕조의 권력 공백기였던 B.C 18, 17 세기에

이집트로 이주해서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 정착했다가 17세기에

이집트의 이방인 왕조인 15왕조(1650?-1540?, 16왕조도 힉소스 왕조로 보는 견해가 있음)를 세웠다.

이때 원래 이집트 왕조는 나일강 상류쪽으로 밀려 갔고,

테베(룩소, 노아몬)을 중심으로 17왕조를 세웠으나 힘이 없어서 힉소스 왕조에 예속되어 있었다.

힉소스 족은 처음에는 멤피스에 수도를 정했다가

나일강 삼각주에 아바리스라는 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로 삼았는데,

이 아바리스가 고센 땅이라 불리는 지역의 중심이었다.

학자들이 힉소스가 이집트를 다스릴 때, 

요셉이 총리가 된 일도 있었고, 야곱 후손이 애굽으로 이주한 일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 당시 가나안 땅은 이집트의 직접 또는 간접 통치를 받고 있었다.

이집트 왕조가 한 때 '아마르나'라는 도시를 수도로 삼았을 때가 있는데,

이 시기 가나안에 있는 영주들이 '하피루'로 불리는 이들의 침입을 받아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서신들을 보냈는데, 이것을 '아마르나 서신'이라고 부른다.

이 서신들을 보면, 가나안 도시 국가의 영주들은 이집트라는 대국에 속한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같은 문화와 통치 영역에 속한 곳으로 가는 일상적인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학자들은 아마르나 서신에 나오는 '하피루'가 여호수아의 군대였을 것으로 보았으나 현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피루가 정처없이 떠도는 무리를 일컫는 일반적인 사회적인 용어로서 사회의 무법자들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 야곱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다.

우선 테베에 자리잡고 있던 17 왕조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이집트 18왕조의

아흐모세 1세가 이방인 왕조였던 힉소스 족을 이집트 땅에서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때가 B.C 1500년 대이다.

결국 이집트 18왕조는 투트모세 1세때 힉소스 족을 완전히 몰아냈고,

힉소스의 수도였던 아바리스를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아마 이때 많은 셈족들이 추방 되었을 것이나, 

야곱의 후손들은 그대로 고센 땅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러나 왕상 6:1절에 근거하여 18왕조 시기인 B.C 1450년대 출애굽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투트모세 2세로 보고, 출애굽은 투트모세 3세때 또는 그의 아들인 아멘호텝 2세때로 보고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1장에 나오는 라암셋과 비돔이라도 도시가

18왕조를 무너뜨리고 19왕조를 개설한 라암세스 왕조 시대의 도시이기 때문에

19왕조가 개설된 이후인 13세기 후기 출애굽 설도 지지를 받고 있다. 

후기 출애굽 설에 의하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는 19왕조의 두번째 왕인 세토스 1세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출애굽이 등장하는 12장에서 정리해 보기로 한다)

 


 

어찌되었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은

고센 땅에 살고 있던 야곱의 후손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야곱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큰 무리를 이루었고,

바로는 전쟁이 발발하면 큰 무리가 된 그들이 적의 편에 설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미 힉소스 왕조 때 이방인들이 합세하여 이집트 왕조를 무너뜨리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야곱의 후손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펼치는데,

그 중 하나는 버려졌던 힉소스 왕조의 수도인 아바리스(재건 후 라암셋이 됨)를 재건하는 일과 국고성(수비 방벽) 비돔 등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노동 인력으로 부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 여인들의 출산을 돕는 산파들에게 포고령을 내려 야곱 후손의 아이가 태어날 때 남자 아이를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것이다.

 

이 무자비한 바로의 정책은 효과가 없었는데,

가중되는 탄압과 노동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후손들, 이스라엘은 계속 번성했고,

산판들은 바로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여 남자아이들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포악하고 무자비한 전제 정권에 맞선 연약한 여인인 산파들을 하나님이 칭찬하셨고, 복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이 무자비한 바로의 정권을 출애굽으로 무너뜨리실 것인데,

이 일 역시 연약한 여인들인 요게벳, 미리암 등의 헌신으로 시작하셨다.

요게벳과 미리암 애굽의 공주, 십보라라는 여인들을 통해

출애굽의 사람 모세가 준비되는 이야기가 출애굽기 2장이다.

 

출애굽기 이야기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품고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