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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큐티 교재(필사&정리)/출애굽기

출애굽기 4장 -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4:1, '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고..,'

4;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화려한 스펙과 잘 포장된 인간적인 능력을 드러냄으로

교회와 사역에서 좋은 자리에 들어 가려고 기를 쓰는 것이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목회 현장의 모습인데,

하나님의 사역 떠맡기를 두려워하고, 거절하는 모세의 영성이 참 낮설다.

모세의 영성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거절하는 모세를 기어이 자신의 사역으로 밀어 넣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그립다.

 

시내광야 풍경


 

출애굽기 4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출애굽 사명에 버티던 모세가 결국 항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출애굽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굽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계속 거절하던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설득과 협박에 가까운 회유(?)에 그 사명을 결국 짊어졌다.

목회적인 소명은 내가 찾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지워 주시는 평생의 짐인듯 하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그 무거운 짐을 모세에게 지우신 다음,

그에게 지팡이 하나만  주셨는데, 그것은 양을 치기 위해 늘 지니고 다니던 것이다.

엄청난 사역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주신 것은 그의 늘 사용하던 지팡이였다는 것이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달라진 것은 그 지팡이마저 모세처럼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 뿐이었다.

 


 

모세는 이제 정든 사람들과 익숙한 풍경이었을 미디안 땅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가족(아내, 두 아들)을 데리고 소명의 땅인 이집트로 떠났다.

모세가 장인 가족과 익숙한 장소를 떠나 이집트로 갈 때,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는데,

아내 십보라가 돌칼로 아들(장자)의 표피를 베어(할례)를 행한 후에야 살려 주셨다.

전후 설명이 없이 갑작스럽게 끼어든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한가지 추측해 보는 것은 출애굽에도 장자의 죽음이라는 피흘림이 있어야 했듯이,

모세가 시작하는 소명에도 그와 가족 전체의 헌신을 요구하신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산까지 마중 나온 아론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아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고, 이적을 행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믿으며, 고난을 돌아보시고 살피신 여호와를 경배했다.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모세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은 누구일까?

왕상 6:1절의 연대 계산에 따르면

이들은 이집트를 지배하던 힉소스 족(이집트 15, 16왕조)을

B.C 1550-1300년까지 존속했던 이집트 18왕조이다.

18왕조의 투트모세 3세가 대략 B.C 1500-1440년대에(연대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음) 통치했다.

왕상 6:1절의 연대 계산에 따르면 출애굽 시기는 B.C 1440년때이고,

모세가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다 죽은 후, 바로 앞에 설 때가 80살이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 투트모세 3세와 그의 신하들로 추측한다면,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간 때는 B.C 1440년때 쯤이고,

모세가 대결한 바로는 투트모세 다음 왕인 아멘호텝 2세로 볼 수 있다.

 

한편 출애굽이 이집트 19왕조하에서 일어난 일로 보는 학자들은

출 1장에 등장하는 라암셋과 비돔이라는 도시 이름을 근거로 들고 있다. 

물론 모압과 암몬 족등 다른 근거들도 있다.

19왕조의 세토스 1세와 라암세스 2세는 힉소스의 수도였던 아비리스를 재건한후(이들은 힉소스 혈통),

그 도시의 이름을 '라암세스의 집' 이라는 뜻으로 라암셋이라고 불렀다.

라암셋이라는 도시를 만든 19왕조가 이집트로 통치하던 B.C 1300-1080년이기 때문에

모세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 시대를 통치했던 세토스 1세, 라암세스 2세 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학설 모두 모세와 출애굽 시기에 어울리는 것도 있고,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어서 여전히 모세와 출애굽에 연대는 논쟁 중에 있는 학설이다.

지금부터 3000년을 훨씬 넘어서는 시기의 이야기라서

이집트 왕들의 통치 연대도 학자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세와 출애굽의 연대 논쟁은 전체적인 역사 배경을 이해하는 정도로만 여기면 될듯 하다.